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시와타리 다이스케 (문단 편집) == 활동 == 어린 시절에 아버지의 회사의 사정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에서 이민생활을 하다가 중학교를 다니던 도중 본국으로 귀국했다. 1992년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도 안가고 2년동안 백수로 놀다가 '프로작가나 해볼까'라는 마음에 1994년 봄 게임전문학교에 입학, 그 해 가을에 [[스트리트 파이터 2]]에 이어서 [[킹 오브 파이터즈]]가 유행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이시와타리는 게임을 제작하기로 마음을 먹고 게임 전문학교 '어뮤즈먼트미디어 종합학원'의 게임 크리에이터 학과에 들어가게 된다. 거기서 길티기어의 초안이 되는 설정들을 짜고 난 후 1995년 여름 2학년을 다니던 도중 휴학하고 [[아크 시스템 웍스]]에 인턴으로 들어간다.[* 인턴 이력사항에 'SNK의 '월화의 검사'에서 그래픽을 담당하고 있는 것을 계기로 게임을 만들고 싶다'라는 루머가 있는데, 길티기어 제작 도중에 월화의 검사 제작에 외주로 참여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확실하지 않으며 앞뒤도 맞지 않는다. 월화의 검사는 1995년 말이 아닌 1997년 말에 발매한 게임이기 때문. 만일 월화의 검사 발매가 2년 미뤄졌다면 가능성은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크 시스템 웍스]]는 88년부터 이런저런 외주제작을 해오던 게임 제작 회사였으나 자체 IP는 물론이고 커다란 히트작 또한 없었으며 외주제작도 끊기면서 회사는 도산 직전이었다. 실제로 95년부터 길티기어가 발매된 98년 사이 아무런 발매작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이 때 신입으로 들어간 이시와타리는 사장에게 스트리트 파이터 2 같은 게임을 만들다고 싶다 요청했고 사장은 '언젠가 만들든가?' 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후 십수명의 스태프들로 구성된 TEAM NEO BLOOD가 설립, 이시와타리는 혼자서 기획, 게임디자인, 세계관 설정, 그래픽 작성, 홍보용 일러스트, 작곡, 주인공 성우까지 맡아가며 초대 길티기어를 만들었다. 이 팀 자체가 대부분 신입인데다가 상업게임을 개발한 경험도 전무하였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게임이 용케 발매되었다는게 놀라울 정도. 개발비가 부족했기 때문에 이시와타리를 비롯한 스태프들이 성우도 담당했다고 한다[* 길티기어2 오버츄어에서는 이즈나의 서번트역도 맡았다.][* 길티기어 이스카의 보스 [[레오팔돈(길티기어)|레오팔돈]]의 테마곡인 Kill DOG as the sacrifice to DOG에서 개(?)처럼 샤우팅하는 목소리 담당.]. 초대 길티 기어 제작시에는 음악적 지식이 부족하여 제작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초대 길티기어 시절에는 음악적인 지식이 별로 없어서 음악담당 스태프들에게 '좀 더 짜릿한 음악을 만들 수는 없을까요'라고 100만번 이상은 말했다고 한다. 게다가 코드의 존재조차 모른채 음악을 만들었다! 어쨌든 그가 구상한 음악의 의미는 어느정도 통한 것 같다. 결론적으로 미디 스타일의 원곡을 스즈키 타카오(鈴木 高雄)에게 건내주면 그걸 편곡하는 스타일로 음악이 완성되었다.] 결국 부족했던 음악도 지금에 와서는 이시와타리의 명의로 된 명곡들이 수 없이 많으며, 블레이 블루 시리즈의 사운드 디렉터를 담당했던 것을 보면 될놈될인듯. 그리하여 발매된 초대 길티기어는 밸런스도 엉망이고 버그도 많았으나 [[살계]] 등의 독특한 시스템과 메탈풍의 BGM, 매력적인 캐릭터 등의 요소로 '재미있는 쿠소게' 정도로 평가되며 주목받게 된다. 아틀러스의 퍼블리싱으로 해외에도 팔리게 되고, 무엇보다 당시 존재감이 없었던 [[사미]]의 지원을 받아 후속작을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이 컸다. 그리고 [[길티기어 X]]의 제작 및 발매로 정신없는 러시가 계속되는 치열하면서도 초대작에 비해 상당히 다듬어진 게임성과 20년 정도가 지난 지금 봐도 굉장한 퀄리티의 도트 그래픽[*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격투게임으로 [[스트리트 파이터 3 서드 스트라이크]]를 뽑은 것을 보면 이러한 고해상도 그래픽은 스트리트 파이터 3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8-bit 풍을 배제한 현대적인 사운드로 업그레이드한 헤비 메탈과 록 장르 사운드로 2D 격투게임계에 엄청난 충격을 주며 매니악하긴 하지만 격겜 좀 즐겨봤다 하는 사람은 이름 한번은 들어봤을 정도로 메이저한 위치로 급부상했다. 어느 정도냐면 당시 한국에 발매했을 때 KOF나 스트리트 파이터, 철권 등 내로라하는 메이저급 오락실 격투 게임들이 즐비하던 2000년대 초에서도 이 게임을 해보거나 해본 적은 없어도 이 게임의 특징인 헤비 메탈 록의 bgm을 떠올릴 정도의 파격적인 요소를 보여주었다. 게다가 이때의 길티기어를 계기로 종종 고퀄리티의 명곡이 나오긴 했어도 다른 격겜들이 길티기어의 bgm에 자극을 받아 점차 게임 내의 캐릭터 테마곡 및 bgm의 퀄리티를 신경쓰기 시작하게 된다. 이처럼 길티기어 시리즈와 아크 시스템 웍스를 이끌다시피 한 사람이지만 본인은 정작 길티기어의 최고 전성기라고 볼수 있는 XX#R 이후 길티기어 시리즈에서 손을 떼고, 이스카라는 흑역사가 터진 뒤 판권 문제로 시리즈에 관여하지 못하다가 오랜 기간 후에 RTS 장르의 [[길티기어 2 - 오버츄어]]를 내놓았고, 게임 자체의 평가는 괜찮은 편이나 기존과는 너무나도 생소한 장르였던 데다 2 제작 당시는 판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대부분의 기존 캐릭터들이 잘려나가는 등의 문제로 상업적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이후 길티기어 2의 작업을 마치고 새롭게 개발 중이던 대전 격투 게임인 [[블레이블루 시리즈]]의 음악담당이 되었다. 블레이블루 CS 콘솔판의 [[콘도 카나코]]가 부른 추가곡 'Pandora tears'와 [[이마이 아사미]]가 부른 CS2의 오프닝곡 '심창(深蒼)'도 이 분이 작곡하였고, 그러다 [[http://www.famitsu.com/news/201011/27036257.html|2011년 1월에 개최되는 길티기어X블레이블루 MUSIC LIVE 2011을 앞두고 진행된 패미통 인터뷰]]에서 속편을 계속해서 제작하고 싶다고 했고, 이후 [[길티기어 Xrd]]로 다시 한번 그 당시 카툰 렌더링의 정점을 보여주는 뛰어난 그래픽과 항상 길티기어의 발목을 잡아왔던 높은 진입장벽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여 굉장한 호평을 받았다. 본디 샤프 리로드의 작업이 끝나고 길티기어 2를 작업하는 사이 모리 토시미치가 버전 업을 담당하였으나, 길티기어 2의 상업적 실패로 인해 격투게임을 만들 의욕도 없었던 때 블레이블루의 성공으로 인해 생각을 고쳤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